Contradictions and change
본문에 앞서 몇 가지 말씀드리자면….
생각의 실마리로 놓인 단어는 '모순'입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보죠. 여기 달걀이 있습니다. 이 달걀은 지금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달걀은 달걀인 동시에 달걀이 아니거든요. 달걀은 얼마든지 병아리가 될 수 있죠. 물론 무정란은 병아리가 될 수 없고 유정란이라도 사람에 의해 삶아지거나 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여기서 필요해지는 전제가 '모든 생명체는 편안해지려는 본능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정말 모든 생명체는 편안해지려 하는가. 이것에 대한 질문은 아직 생각을 더 해봐야 합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라 확실한 전제는 아니거든요. 대전제가 부실하니 갑자기 앞으로 전개할 내용 전체가 부실해지네요. 하지만, 전 우선 이 전제를 가지고 계속 글을 쓰겠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달걀은 달걀인 동시에 달걀이 아닙니다. 이렇게 모순된 상황에서 생명체는 혼란을 느낍니다. 한 번에 두 가지가 존재하는 것은 안정된 상황일지 몰라도 절대 편한 상황은 아니니까요.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은 비단 달걀의 경우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생명은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간다.'라는 커다란 모순이 있죠. 꽃씨는 꽃이 될 수 있다는 모순이 있고, 올챙이는 개구리가 될 수 있다는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밖에 또 얼마나 많은 모순이 존재하는지요.
모순을 없애고 조금 더 편안해 지고자 위해 달걀은 깨져서 병아리가 됩니다. 이게 바로 변화'인 겁니다. 달걀이 '깨진다.'라는 변화의 과정을 거쳐 병아리가 됐으니까요. 분명히 병아리는 달걀이 아닙니다.
자, 이제 달걀은 병아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아리는 아직 안정된 존재가 아닙니다. 병아리는 여전히 병아리인 동시에 병아리가 아닙니다. 병아리는 '닭'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병아리는 한때 달걀이었다는 모순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달걀이 갑자기 병아리가 되었으니까요.
엄밀히 말하면 달걀이 병아리로 변하는 순간이 '갑자기'는 아니지만 좀 더 넓게 우주까지 갈 필요 없이 지구의 처지에서 보면 달걀이 병아리로 변하는 과정을 '갑자기'라 말해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문명의 발생과 부귀 몰락도 지구 앞에선 '한 순간'이라 표현되니까요.
이 때 병아리가 달걀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기에 변하지 않는 모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병아리가 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모순입니다. 미래의 일에 대한 모순이니까요. 외부조건을 모두 없애더라도 개인적 병이 있을 수 있고, 심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으니 변할 수 있는 모순이지만, 중요한 사실은 병아리는 닭이 될 수 있다는 것이겠죠.
어쩌면 미래에 대한 모순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달걀이 병아리가 되고, 병아리가 닭이 되는 것은 '가능성'의 문제죠. 꽃씨가 꽃이 되어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것 역시 가능성입니다.
인간의 경우엔 수많은 가능성이 있고, 그렇기에 그 만큼 수 많은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입니다. 전지적 모순인 '사는 동시에 죽는다.'의 경우엔 가능성이라고 할 수 없죠. 죽음을 벗어날 생명체는 없으니까요.
이제 병아리는 다시 모순을 없애려고 닭으로 변화합니다.
평안을 찾기 위한 노력, 변화. 그래서 병아리는 닭이 됩니다. 생명체들도 계속 변화합니다. 좀 더 편하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순이 없애는 과정. 그것이 변화입니다.
이 정도로 닭, 혹은 병아리, 혹은 달걀에 대한 얘기를 끝내겠습니다. 충분히 제가 생각하는 변화와 모순이 무엇인가가 전달됐으리라 싶어서요.
지금까지 얘기한 '달걀의 예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는 질문은, 닭은 이제 변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질문의 답은 '아니요.'입니다. 여전히 대전제인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간다.'라는 모순이 있잖아요.
다른 생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변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 변화는 막을 수 없습니다. 생명체로서의 본능과 모순된 현실의 충동은 그 수가 끝이 없는데 어떻게 모든 모순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모든 모순이 사라진다 해도 직접 붙인 이름처럼 '전지적인 모순'이 계속해서 있을 테니 말이죠.
우리가 대할 수 있는 자세는 그저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것뿐이 아닐는지 생각해 봅니다.


